[대법원 판례] 음주운전 범인도피방조죄
1. 벌금 이상의 형에 해당하는 죄를 범한 범인을 위해 타인이 허위로 자백하여 범인도피죄를 범하는 것을 범인 스스로 방조하는 경우, 방어권 남용으로 범인도피방조죄가 성립하는지 여부(적극) / 이러한 대법원의 현재 법리는 타당하여 유지되어야 하는지 여부(적극)
[다수의견] 형법 제151조 제1항은 ‘벌금 이상의 형에 해당하는 죄를 범한 자(이하 ‘범인’이라 한다)를 도피하게 한 자’를 처벌한다고 규정한다. 범인 스스로 도피하는 행위는 형법 제151조 제1항의 범인도피죄로 처벌되지 않는다. 그런데 대법원은 2008. 11. 13. 선고 2008도7647 판결 등에서 ‘범인을 위해 타인이 허위로 자백하여 범인도피죄를 범하는 것을 범인 스스로 방조하는 경우 방어권 남용으로 범인도피방조죄가 성립한다.’고 판시하였다. 이러한 현재의 판례 법리는 타당하므로 유지되어야 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가) 형법 제151조 제1항에서 규정하는 범인도피죄는 범인은닉 이외의 방법으로 범인에 대한 수사, 재판 및 형의 집행 등 형사사법 작용을 곤란 또는 불가능하게 하는 때에 성립하는 것으로서 그 행위의 방법에 어떠한 제한이 없고, 형사사법 작용을 방해하는 결과가 현실적으로 초래될 것이 요구되지 않는 위험범이다. 범인 아닌 사람이 수사기관에 범인임을 자처하고 허위사실을 진술하여 진범의 체포와 발견에 지장을 초래한 행위는 범인도피죄에 해당한다.
(나) ① 대법원은 범인 스스로 도피하는 행위를 방어권 범위 내의 것으로 보아 범인도피죄로 처벌하지 않으면서, 다른 한편으로 2000. 3. 24. 선고 2000도20 판결에서 ‘범인이 자신을 위하여 타인으로 하여금 허위 자백을 하게 하여 범인도피죄를 범하도록 하는 행위는 방어권 남용으로 범인도피교사죄에 해당한다.’(이하 ‘방어권 남용 법리’라 한다)고 판시한 이래 2002. 11. 8. 선고 2002도5096 판결 등에서 여러 차례 같은 취지로 판단함으로써, 그와 같은 범인의 교사행위는 방어권 남용에 해당하여 처벌 대상이 된다는 점을 거듭 강조해 왔다.
② 대법원은 이러한 방어권 남용 법리가 범인을 위해 타인이 허위로 자백하는 것을 범인 스스로 방조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고 보아, 앞서 본 2008도7647 판결에서 ‘피고인의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도주차량) 등 범행에 관하여 수사기관에 허위로 자백하겠다는 타인의 제안에 응하여 피고인이 그 타인에게 사고
발생 및 도주 경위에 관한 상세한 정보를 제공하는 등의 방법으로 타인의 범인도피범행을 방조하였다.’는 공소사실을 유죄로 판단하였다.
③ 그 후 대법원은 2014. 4. 10. 선고 2013도12079 판결에서, 범인이 지인에게 자동차를 이용하여 원하는 목적지로 이동시켜 달라고 요구하거나 속칭 ‘대포폰’을 구해달라고 부탁한 행위는 형사사법 작용에 중대한 장애를 초래한다고 보기 어려운 통상적 도피의 한 유형으로 볼 여지가 충분하여 범인도피교사죄로 처벌되지 않을 수 있다고 하면서도, 범인이 타인으로 하여금 허위 자백을 하게 하는 등으로 범인도피죄를 범하도록 하는 경우와 같이 범인의 행위가 범인 스스로의 도피행위 범주를 벗어난 방어권 남용이라고 볼 수 있을 때에는 범인도피교사죄에 해당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이와 같은 판례의 태도는 현재까지 일관되게 유지되고 있다.
④ 범인이 타인으로 하여금 허위 자백을 하게 하거나 타인의 허위 자백을 촉진⋅강화 또는 용이하게 하는 등의 방법으로 자신 대신 형사처벌을 받을 허위 범인을 수사기관에 내세우는 행위(이하 ‘범인 조작형 도피행위’라 한다)는, 허위 범인으로 말미암아 진범의 존재가 감추어지고 허위 범인에게 수사력이 집중되는 등 수사 방향 자체가 왜곡됨으로써 진범에 대한 수사, 재판 및 형의 집행 등이 곤란하거나 불가능할 수 있다는 점에서 형사사법 작용에 중대한 장애를 초래할 위험이 크다. 이에 비하여 범인이 통상적인 도피행위 범주 내에서 도피에 필요한 물자⋅자금⋅장소 등을 타인으로부터 제공받아 스스로 도피하는 행위는, 그로 인해 범인에 대한 수사 등이 지연되기는 하지만 수사 방향 자체가 크게 왜곡되지는 않아 형사사법 작용에 중대한 장애를 초래할 위험이 상대적으로 작다. 이와 같이 ‘범인 조작형 도피행위’는 기본적인 도피 형태와 구조, 수사기관을 기망하거나 수사와 재판에 혼선을 초래하는 방식, 형사사법 작용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위험성의 정도 등이 통상적인 도피행위와 확연히 다르다. 범인의 이러한 행위는 누구에게나 자연스러운 인간 본성의 발현이라고 보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이를 법적으로 용인하면 우리 사회의 안전과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형사사법 작용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위험성이 매우 크고 일반 국민의 법감정에도 어긋나 법질서에 대한 신뢰가 훼손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대법원은 범인의 ‘범인 조작형 도피행위’를 자기방어권 한계 일탈의 대표적 유형으로 평가하여 범인도피교사⋅방조죄로 처벌해 온 것이다.
⑤ 범인도피죄가 보호하고자 하는 법익은 범인에 대한 수사, 재판 및 형의 집행 등 형사사법 작용과 관련한 국가의 기능이므로, 정당한 형사사법 작용을 중대하게 방해하는 행위를 범인의 방어권 보장을 이유로 아무런 제한 없이 허용할 수는 없다. 그동안 대법원이 범인도피죄와 관련하여 선언해 온 방어권 남용 법리는 법이 허용하는 범인의 자기방어권의 한계에 대한 고민을 거듭한 결과물이다. 범인이 자신의 도피를 위해 타인의 범인도피 범행에 가담하는 행위는 ‘범인 조작형 도피행위’ 외에도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어느 경우이든 범인의 교사⋅방조행위가 스스로의 통상적인 도피행위 범주를 벗어나 형사사법 작용에 중대한 장애를 초래할 위험이 있는 때에는 방어권 남용에 해당하여 범인도피교사⋅방조죄로 처벌할 수 있고, 그것이 방어권 남용 법리의 본질이다.
(다) ① 범인 자신이 진범이라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타인을 허위 범인으로 내세우는 행위는, 그 가담 형태가 교사와 방조 중 어느 것에 해당하더라도 진범의 체포와 발견을 방해하여 형사사법 작용에 중대한 장애를 초래할 위험이 있다는 점에서 방어권 남용으로 평가될 여지가 있는 동일한 범주에 속한다. ‘범인 조작형 도피행위’에 가담한 범인을 범인도피죄의 공범으로 처벌할 것인지는, 범인을 도피하게 하는 것이라고 지목된 행위의 양태와 내용, 범인과 그 타인(범인도피죄의 정범)과의 관계, 행위 당시의 구체적 상황, 형사사법 작용에 영향을 미칠 위험성의 정도 등을 전체적⋅종합적으로 살펴보아 범인의 행위가 방어권 남용에 해당하는지에 관한 법적 평가에 따라 결정되어야 하고, 범인의 가담 형태가 교사인지 방조인지에 따라 처벌 여부를 달리할 것은 아니다.
② 범인이 타인으로 하여금 허위 자백을 하게 하거나 타인의 허위 자백을 촉진⋅강화 또는 용이하게 하는 행위는, 범인과 타인 사이의 긴밀한 유대관계나 이해관계를 바탕으로 동적⋅발전적인 의사형성 과정을 거쳐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고, 명시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상대방과의 암묵적 교감을 통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다. 범인과 타인 사이에 내밀하게 이루어진 의사형성 과정을 사후적으로 재구성하여 그 당시 범인이 타인에게 허위 자백이라는 범죄 결의를 일으킨 것인지 아니면 타인이 먼저 허위 자백을 마음먹고 있었던 것인지 등을 정확하게 평가하기란 쉽지 않다. 허위 자백이라는 범죄 결의의 발생 시점, 타인의 범죄 결의와 범인의 행위 사이의 선후 관계, 범인의 행위가 타인의 범죄 결의에 영향을 미친 정도 등은 주로 범인과 타인의 진술을 기초로 판단하게 된다. 그런데 범인과 타인의 기억이 정확하지 않거나 의도적으로 거짓 진술을 하는 경우 등에는 범인의 행위가 교사와 방조 중 어느 것에 해당하는지 증명하기가 더욱 어려워지고 이들의 사후 진술에 따라 가담 형태가 얼마든지 왜곡되거나 다르게 평가될 수 있다.
③ 이와 같은 ‘범인 조작형 도피행위’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범인이 타인과 긴밀한 의사소통을 거쳐 수사기관에 허위 범인을 내세우는 일련의 과정 중에서 범인의 최초 가담 형태에만 주목하여 교사와 방조를 구분한 다음 방조에 대하여는 방어권 남용 법리의 적용을 배제하게 되면, 범인으로서는 관련자들의 진술에 따라 가담 형태에 대한 평가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악용하여, 실제로는 범인이 타인에게 허위 자백을 교사한 것임에도 자신의 행위를 방조로 가장함으로써 형사처벌 대상에서 쉽게 벗어날 수 있다. 범인도피방조죄에 관한 방어권 남용 법리의 적용 배제는 단지 범인의 범인도피방조행위를 처벌하지 않는 데 그치지 않고 결국에는 가벌성이 높은 범인도피교사행위까지 처벌하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져 실체적 진실 규명을 통한 적정한 형벌권 행사에 장애를 초래할 수 있다. 이는 그동안 대법원이 방어권 남용 법리를 선언하고 유지해 온 배경과 그 근본취지에 어긋나는 결과가 된다.
2. 피고인이 자신의 차량 조수석에 친구 甲을 태우고 혈중알코올농도 0.097%의 술에 취한 상태로 음주운전을 하다가 교통사고를 일으켰는데, 동승한 甲이 피고인에게 “내가 운전한 것으로 해주겠다.”라고 말하자, 피고인은 이에 동의하고 차량 뒷좌석으로 이동한 후 甲이 조수석에서 운전석으로 옮겨 탈 수 있게 하여 마치 甲이 운전한 것과 같은 외관을 만든 다음, 피고인이 보험회사에 전화하여 “甲이 운전하였다.”라고 말하고, 甲은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에게 “내가 운전했다.”라고 말하며 음주측정에 응함으로써 피고인이 甲의 범인도피행위를 방조하였다는 내용으로 기소된 사안에서, 벌금 이상의 형에 해당하는 죄를 범한 범인이 자신을 위한 타인의 허위 자백 또는 진술을 촉진⋅강화하거나 용이하게 하는 등의 방법으로 타인의 범인도피 범행을 방조한 행위는 방어권 남용으로 범인도피방조죄에 해당할 수 있는데, 사고 직후 甲이 피고인의 음주운전 사실 적발 등을 염려하여 피고인에게 먼저 “내가 운전한 것으로 하겠다.”라고 제안하자, 피고인은 이에 응하여 甲과 차량 안에서 자리를 이동한 다음 甲은 운전석 문으로, 피고인은 조수석 뒷문으로 내려 마치 甲이 운전한 것과 같은 외관을 만들었던 점, 그 후 주변 행인의 신고로 경찰관이 사고 현장에 출동하자, 그 자리에서 피고인은 자신이 운전자임을 밝히지 않고 甲으로 하여금 그 자신이 운전자라고 말하면서 경찰관의 음주감지기에 의한 음주측정에 응하도록 한 점, 피고인이 교통사고를 일으킨 실제 운전자라는 사실은, 사고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이 지구대로 복귀한 후에 사고 경위 등을 이상하게 여긴 보험회사 직원의 피고인과 甲에 대한 추궁과 수사기관에 대한 신고로 밝혀지게 된 점 등을 종합하면, 피고인은 위와 같은 행위를 통하여 甲이 피고인을 위해 경찰관에게 그 자신이 운전자라고 허위로 진술하는 것을 용이하게 하였고, 그로 인해 벌금 이상의 형에 해당하는 도로교통법 위반(음주운전)죄를 범한 진범의 발견을 방해하여 형사사법 작용에 중대한 장애를 초래할 위험이 발생하였으므로, 피고인의 방조행위는 방어권 남용으로서 범인도피방조죄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같은 취지에서 피고인에게 범인도피방조죄를 인정한 제1심판결을 그대로 유지한 원심의 판단이 정당하다고 한 사례.